강사법과 대학의 현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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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균관대분회 작성일19-12-09 18:36 조회3,652회 댓글0건본문
6. 대학의 현재와 정부의 역할
이들 구조 조정 전략이나, 우회 회피 전략이 대학 간의 협의나 담합을 통해 전개되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각각의 사립대학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며 다양하고 기발한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사립대학들은 그동안의 비용 절감과 구조 조정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경영 전략의 전선에서 각각의 고립된 참호를 파고 강사법 공세에 대응하는 진지전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은 고등교육과 학술연구의 공공성을 오히려 전략적 방해물로 여긴다.
지금 한국 사회의 여론은 대학에 대해 무심하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맞을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육박하고 있는 비정상적 사회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비정상적으로 낮다.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가 학생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하고, 대학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든 학생의 미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개인과 가족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대학 입시에 투입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투자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입시까지의 높았던 사회적 관심은, 고등교육 과정에 대해서는 뚝 떨어지고, 취업 문제가 부각될 때 다시 높아진다. 대학 교육에 무심한 여론은 대학에 대한 감시 기능이 작동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틈에 대학에서 승자들은 자율성을 활용하여 패자들과의 낙차를 즐기며 기득권을 확장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해왔다. 이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대학 안팎에서 나오기도 어려웠다. 대학 내부는 성과 경쟁의 경영 논리에 순치되어 있고, 대학 외부에서는 그런 대학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다. 대학은 오히려 사회적 무관심을 즐기는 편이었다. 미로 안의 복마전은 이런 분위기에서 조성될 수 있었고, 복마전의 자가 발전으로 미로는 더욱 복잡해졌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고등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은 구두선으로라도 대학 안에서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대학부터 무한경쟁의 판을 키우고 있는 마당에, 공공성 결핍으로 신음하는 사회가 대학에 대해 무슨 기대가 남아있겠는가. 정부도 이 사회 여론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정책 개입 능력을 갖춘 정부가 연구와 교육의 공공성을 상실한 대학에 대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임무 방기이다. 지난 정부가 총장직선제 폐지를 기본 방침으로 세워 재정지원사업 평가 지표에 반영하자, 대분의 대학이 총장 임명제로 돌아섰다. 비용을 입에 달고 사는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 요인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도 지난 정부가 국가장학금 등을 볼모로 동결을 유도하자, 대부분 지금까지 등록금을 동결하였다. 정부가 국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대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확인된 것이다. 이제 정부는 고등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개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행정적 부담과 시행착오에 대한 우려를 가지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들도 동의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인 개정강사법의 법률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정부에서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재정지원사업에 강사 고용 안정 관련 지표를 설정하여 반영하겠다고 하고 있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사업을 적시해가며 대학기본역량평가와 혁신지원사업 및 BK21+ 사업 등에 강사법 정착 여부를 지표로 활용하겠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아직 엄포로만 여기고 있는 듯하다. 강사법 저항을 비롯 각종 비리와 모순이 예상되는 대학부터 교육부 종합감사에 착수하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대학의 저항 의지에 비추어보면 아직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총장직선제 폐지를 들고 나오자 대학들은 휩쓸리듯 직선제를 폐지하였다. 방향은 잘못되었으나, 대학들은 정부의 정책 실천 의지를 선명하게 인지한 것이다. 이번 정부가 강사법을 두고 재정지원과 종합감사, 당근과 채찍 정책을 번갈아 구사하는데도 정책 실천 의지는 왜 대학에 전달되지 못하는 것일까. 강사 인건비 예산을 억제하는 기획재정부, 강사의 직장건강보험 적용을 반대하는 보건복지부, 퇴직급여를 적용하지 않는 고용노동부 등 정부 부처들의 행태는 그들이 고등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청와대가 고등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부족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지난 정부의 총장직선제 폐지 정책 실천 의지는 청와대에서 나온 것으로 인지되었음이 분명하다. 강사법과 고등교육 공공성이 실현되려면 정책 실천 의지가 어디로부터 나와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고등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대학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공동체의 미래 전략을 다시 대학에 물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의 초석을 놓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강사법 정착이 그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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